나의 이야기

[스크랩] 인기 있는 시 모음(이생진. 기형도. 유안진. 서정주)

샛년 2010. 7. 26. 23:11

꽃과 사랑                                        

이생진



꽃은 사랑의 변명이다

아름답다며 코를 갖다대는 동기와 동일하다

이런 동일함 때문에 시를 쓴다

하지만 시에 코를 갖다대는 사람은 없다

시는 머리로 읽고 가슴에 안아야하기 때문이다


시는 시드는 일이 없다

그래 너에게 시를 바치는 일은

너에게 꽃을 바치는 일보다 더 그윽한 일이다



고독                                                     

이생진



나는 떼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어두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기러기 서릿길                    


유안진


헤매어온 인생에서 묻어나는 늦가을 냄새와

헤매임이 남아 있는 눈빛에 얼비치는 초겨울 빛깔로

만났다고 하랴

헤어졌다 하랴

헤매였던 곳곳의 은혜와 굴욕을 삭인 쉰 목청으로

저녁 바람이 불고

늦게 핀 들국화 이우는 떨기 앞에

목놓아 큰 울음도 바쳐봐야 한다

그런 다음 침묵으로 길을 묻는 無心

청년 예수도 젊은 싯다르타도

서릿길 이런 때 詩聖이 되셨으리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표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를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때는 여왕보다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스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여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국화옆에서 

서정주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서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닢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네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었나보다.



禪雲寺 洞口

서정주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읍니다.




춘향 유문(春香 遺文)

-春香의 말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맞나든날

우리 둘이서 그늘밑에 서있든

그 무성하고 푸르든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것입니다


천길 당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드래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쏘내기되야 퍼부을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거에요!




行進曲행진곡 

서정주



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어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앍안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거드면 저무는 하늘.

이러서서 主人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끔 ㅅ식 醉취해가지고

우리 모두다 도라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다 ㅅ물에선

亂打난타하여 떠러지는 나의 鍾종 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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