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활용

샛년 2011. 2. 8. 16:24

재활용

이 정 자

함박눈이 펄펄 휘날리고 있다. 재활용품 수거함이 놓여있는 곳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헌옷 수거함에는 넘치는 옷들이 눈을 맞으며 눈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수거함 밖으로 넘쳐나는 옷들을 통속으로 깊이 밀어 넣으며 주춤해본다.

요즘 제주는 전통적인 이사철 신구간이다. “제주에는 예부터 인간의 길흉화목을 관장하는 토속 신들이 임무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대한(大寒)후 5일째부터 입춘(立春) 3일전인 신구간에 이사를 해야 궂은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요즘 이사 짐을 싣고 나르는 차량들이 많아졌다. 커다란 엘리카 차량이 좁은 골목길에 세워져있다. 이사 짐 부피를 보면서 주인의 생활을 가늠해 본다.

아파트 뒤편에 설치된 쓰레기 집하장. 클린하우스에는 재활용품 수거함. 음식물 수거함 주변이 생활 쓰레기로 넘치고 있다. 옆에는 폐가전 제품, 폐가구들도 한 몫을 하며 즐비하다. 아파트부녀회에서 관리하는‘헌옷 수거함’이 넘쳐나고 있음은 우리네 생활이 풍족함을 나타내기도 하겠지만, 대물림을 하지 않은 소가족 형태의 단촐 함에서 오는 이유 이기도하겠다.

해마다, 청명한 하늘에 솜털구름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함박웃음 머금은 친정고모님의 얼굴이 하늘 가득이다. 친정아버지도 외동이요 고모님도 외동 딸이셨다. 할머님은 언제나 단촐 한 자식 타령으로 외로워하시며, 아버지에게는 자식을 많이 두어야 부자로 잘 산다며 추궁하셨기에, 아버지는 8남매를 할머니의 후손으로 키워내셨다.

친정고모님은, 해녀로 일찍부터 출가 물질을 다니셨다. 결혼 후에는 일본 대판에 출가 물질을 떠나셨다가 고향을 등지는 비운을 맞이했다. 고모님은 통통한 몸매로 열길 물속을 숨비소리 내지르며 해산물을 망사리 가득 캐어내는 상군 해녀로 소문났다.

할머님은 상군 딸을 온 동네 자랑하며 해마다 보내오는 돈을 모아 신작로 큰 밭을 사들이기도 하였다. 고모님이 해녀 작업을 마친, 휴 한기에 일본에서 제주 섬으로 온 다는 연락을 받으면 할머님은 무척이나 종종 걸음이셨다.

1960년대 후반,

보리 고개라는 매우 어려운 시기에 고모님이 고향에 들어온다는 소식은 우리 식구들에게 커다란 기쁨이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서 귀가해보니 커다란 보루박스가 마당 가운데 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동네를 구수하게 하는지, 집집마다 키우는 강아지들이 마당 안으로 달려들 것만 같았다. 동네이웃 친척들이 한 손에 뭔가 들고 모여들기 시작을 했다.

할머니는 마당에 멍석을 펴고 큰 박스를 풀어 헤쳤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많은 옷들을 훌훌 털어보며 하나씩 펼쳐본다. 적당한 나눔을 하면서 우리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으라는 말에 욕심쟁이가 되었다. 누비잠바, 스웨터, 주름치마, 쫄쫄이바지, 조끼, 목도리, 장갑… 언니와 나는 보자기에 마음껏 챙기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쫒아 오시더니 달래는 것이었다.

염치없이 우리 식구들만 많이 가지면 친지 이웃에게 나누어줄 옷이 모자라니, 내 놓으라는 설득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나는 울음으로 몇 가지를 챙겼다. 고모님은 다음에 올 때는, 더 좋은 옷 들을 많이 가져 온다며 친척들에게 약속을 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옷들을 입고 다니면서 부잣집 아이들이란 소릴 들었다. 그때 옷 꾸러미 속에서 나온 조그만 라디오는 동네에서 일기예보를 담당했다.

생활 물자가 귀했던 시기에, 고모님 덕분에 시계, 라디오, 재봉틀이 있어서 비오는 날이면 이웃 들은 헤진 옷들을 가져와서 웃음소리와 함께 수선 할 차례를 기다렸다.

일본으로 돌아가신 고모님은 고향의 친지 가족들을 생각하며, 옷들을 모으고 생활필수품을 수집 했단다. 선진국 대열에 있던 일본은 쌓인 먼지도 활용 한다고 했다.

가끔 자전거타고 달려온 우체국 배달부 아저씨에게 할머니는, 고모님이 대필하여 보내온 편지의 내용을 읽어 달라며 부탁을 드렸다.

고모님이 다녀가신 다음 해 가을,

청명한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오후. 급히 달려온 배달부 아저씨의 “급 전보”라는 말에 식구들은 화들짝 놀랐다. 전보 내용은 바다에 물질 작업 나갔던 고모님이 바다에서 실신하고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유명을 달리 했단다. 그 후 할머님의 한숨 소리는 그칠 날이 없었다.

다시 큰 보루박스를 굴리며 달려 올 것만 같았던 고모님!

지금 생각하면 타국에서 어려운 고향을 생각하며, 재활용 수거함에서 옷가지들을 모았을 것이다. 몇 년 전 아파트 부녀회 활동을 하면서 재활용품 분리수거에 앞장을 섰다. 철 따라 넘쳐나는 옷가지들이 누군가 다시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헌 옷 수거함에 내어놓은 옷가지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모았다. 부녀회 알뜰 판매장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게 부녀회원들은 손질을 하고 예쁘게 옷걸이에 걸어둔다. 입학 시기에는 학생들의 교복, 체육복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학생을 둔 엄마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손질하고, 주인을 기다렸다.

요즘은 재활용으로 수집한 깨끗한 옷들은 아프리카 난민촌으로 가져가는 구호물자가 된다. 나머지 옷들은 폐품으로 재활용 한다고 하니 소중한 자원이 되는 셈이다. 우리 세대가 겪었던 물자의 어려움을 후진국에 베풀고 있다. 생활물자의 궁핍함을 느꼈던 우리는 물자 절약에 앞장서는 마음으로 각종 폐기물을 분류하고, 미관을 생각하며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

신구간 기간에는 ‘중고물품 교환센타, 아나바다 장터’가 상설 되어서 서로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기도 하고 있으니 좋은 일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