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업은 돌
이 정 자
어제는 종일 포근한 기온 속에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꽃샘추위에 웅크렸던 대지가 하품을 하며 심호흡 하는 것일까? 벌거벗은 나무우듬지에 뾰족이 올라오는 새싹들이 꿈틀거리며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결빙되었던 땅속도 스멀스멀 솜이불처럼 포근히 올라와 봄 마중을 하는가보다. 산책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활기차서 더불어 기분이 좋아진다.
사라봉 산책로 창창한 소나무틈새로 발사되는 피톤치드향이 코끝을 잡아당기고. 검푸른 바다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니 인공 매립되어가는 해안포구의 변화가 호수처럼 잔잔하고 아름답다. 갯가에는 해초인 파래가 검은 돌에 서식하여 마치 비단길처럼 반짝인다. 해안선을 따라 풍경을 만끽하며 들숨, 날숨을 토해본다. 가파른 능선에, 초록 치마를 입고 있는 자매의 형상에 ‘애기 업은 돌’이라 표시한 몽돌 위에 새겨진 글귀가 나를 붙잡는다. 유심히 바라보니 어려웠던 초등시절, 친구들이 나를 부르며 수면위로 떠올라 손짓하는 듯하다.
커다란 팽나무가 마을 수장처럼 동서사방으로 벌리고 있는 농어촌마을. 마을회관 확성기가 새벽잠을 일깨우면 경운기 소리도 가세하여 활기 넘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우리들은 공부보다는 동생들을 돌보는 큰 역할을 했다. 학교가기 전 할 일, 다녀온 뒤 할 일이 하루의 일과표에 정해졌으니.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울담 안 초가집 마당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넘나들었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초가집이 쓰레트 지붕으로 개조되고, 돼지우리가 있던 곳에 신식화장실이 만들어지고 좁은 마을길은 새마을운동으로 신작로가 되었다. 마을 공터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강아지 소리가 합창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겨운 농촌마을.
봄이 되면 바다 목장은 해경기가 되고, 해녀들이 바다에 물질하러 가는 날에는 *애기업개는 엄마 찾아 삼만 리. 마을길을 벗어 나기도전에 아기는 울며불며 발버둥을 쳤다. 남동생을 포대기로 들춰 업고 몇 번이나 끈을 잡아당기며 먼 곳에 있는 바닷가로 향하는 길은 왜 그리 멀었는지.
동네 삼거리를 지날 때쯤이면 팽나무 쉼 팡 그늘에 모여 계시던 어른께서 하시는 말씀 “ *몰축 새끼 포 붙은 거 닮다.” 하시면서 세경 보며 걷지 말고 종종 걸음을 재촉했다. 등에 업은 동생은 울다 지쳐 잠들었는지, 조용해지면 멀리서 해녀들의 자맥질 소리가 들렸다. 길가에는 가축들이 풀을 뜯어먹으며 달려들 기세다. 무서움에 땀은 흥건하고, 돌담 옆에서 뱀이 뛰쳐나오면, 걸음아! 날 살려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어머니는 *태왁 *망사리를 둘러메고 온 몸을 떨면서 *불턱으로 달려왔다. 그리곤 추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구덕에 가져온 땔감을 불 지피고 작은 소라를 구워 주기도하고 불똥이 달라붙은 미역귀를 구워주면 입이 검도록 먹었다.
어려운 시절에는 “밭 하나 팔지 말고, 입하나 줄이라” 했던가? 친구들 중에 제일착하고 달리기 잘하는 순자. 중학교 입학식 날 친구가 보이지 않아 찾아 갔더니, 순자어머니가 울면서 먼 친척집에 식모살이로 보냈단다. 애기 업개로 보냈다는 것이다.
객지의 설움을 모르던 철없는 우리들은 멀리 떠난 친구가 부러웠다. 부모님 슬하에 자라면서도 불평불만이 많았던 철부지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난여름 우연히 순자동생을 만나 연락처를 알아내고 전화를 했더니, 무척이나 반가운 목소리다. 벌써 중년이 되어 자녀들의 근황을 들어보며 서로 옛정을 찾았다. 여러 근황을 알면서도 먼저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지나간 시간들은 떠 올리기가 싫단다. 애기 업개의 애환과고충이 얼마나 컸으면 고향을 등지고 살아갈까하는 생각에 목울대가 잠겼다. 언제든지 고향에 내려오면 만나서 추억 보따리 풀어 헤치고 우정을 나누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애기 업은 돌은, 거친 풍파에도 자연의 풍광을 지키는 수장처럼 의연해 보인다. 돌하르방의 자손처럼 애환과 설움을 치마폭에 감싸 안고, 산책로를 운동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과 행복 바이러스를 충전해 주리라.
*애기 업개:애기보는 사람을 의미하는 제주도 사투리
몰축:표준어로는 사마귀
태왁:해녀가 물질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이 뜨게하는 공 모양의 기구.
망사리:해녀가 채취한 해산물, 해초류등을 담아두는 그물로된 기구
불턱:해녀들이 자맥질하며 작업하다가 언 몸을 따뜻이 하기 위하여
마련해 간 땔감으로 불을 지펴서 쬐는곳.
**각주달기: 모양~각주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