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종환

샛년 2009. 3. 4. 21:49

도종환의 시 쓰기 방향

강영기 (평론가)


1. 들어가며

 

  도종환은 1984년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의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2006년 “해인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 지금까지 도종환 시인의 발표한 시집은“고두미 마을에서”“ 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석”있으며, 시선집으로 “시 피는 꽃”이 있다.
을 전개하는 시인이다. 이 속에서 그는‘민족, 교육, 생활, 삶에 대한 각성’ 등 인간의 살아가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한편, 시가 삶의 구체적인 양상으로서 현실 속의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대립 ․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당연히 시에는 대상을 인식하는 시인 자신의 가치관이 드러나게 되고 시인은 詩作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의식 문제의식이란 총체적 현실 속에서 시인의 삶이 부딪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시인 나름의 인식과 해결 전망을 의미한다.
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식의 측면에서 볼 때, 시는 시인이 살고 있는 현실의 실상을 읽어내는‘인식의 틀’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 글은 도종환 시에 나타나는 그의 세상에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 쓰기 방향에 맞추어 살피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는 시는 시인의 자기 인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시의 내용은 아무리 사회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늘상 개인의 자기 인식을 매개로 현실과 이상의 상호 연관을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시인의 자기 인식이다. 그래서 시인은 객관적 실재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주관적 정서를 이야기한다. 그 주관적 정서는 시적 내용을 이룬다.

 

2.‘역사’를 통한 민족의 아픔 쓰기

 

  문학에서 역사는 하나의 소재이며 반영의 대상이다. 작가는 소재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그 인식의 결과를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한다. 그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가 바로 작가의 소명이다. 역사를 작품의 전체적 소재로 사용하는 작가는 당연히 역사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그 압력에 굴복한 작가는 문학작품을 쓰지 않고 역사를 서술하게 될 터이고, 그 압력을 극복한 작가는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문학작품을 쓰게 될 것이다.  문학은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도종환의 시에 나타나는 역사는 민족과 연관된다. 그래서 그는 민족이라는 대상이 놓인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역사를 시에 담는다. 그가 생각하는 ‘민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우리 할매들 싸락눈빛 백설기 시루 가득 쪄놓고
손 모두어 하늘에 빌던 곳
반드시 돌아가야 할 그곳이 있기 때문이다.
소정방이 끌어들여 백제민 몰아내고
거북비 세우던 통일 따윈 말도 꺼내지 말거라.
小嶽, 천문령에 깃발 높이 달던 대조영 장군
동모산으로 동간도로 말 몰아 달릴 때
흰옷 입은 발해 백성 산맥을 하얗게 덮으며 오고
말갈족도 달려와 무릎 꿇고 글 배웠니라.


―<이 나라 흰옷>에서 “고두미 마을에서”


  인용 시를 통해 시인은‘하늘에 비’는 행위와“이 나라 흰옷”이라는 제목을 통해 하늘을 숭상하는 우리 민족을 그려낸다. 시인은 우리 민족이 문화적으로, 또는 자주적으로 민족의 힘을 지녔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인의 민족에 대한 인식은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그래서 시인은“소정방이 끌어들여 백제민 몰아내고 거북비 세우던 통일 따윈 말도 꺼내지 말거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시인은“소정방”이라는 외세가 개입하여 이룬 반쪽“통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들려준다. 그리고“우리 할매들 싸락눈빛 백설기 시루 가득 쪄놓고 손 모두어 하늘에 빌던 곳”을“반드시 돌아가야 할 그곳”으로 제시한다. 그곳은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통일의 장소이다.
  이러한 시인의 민족 인식은 우리 민족이 겪은 힘든 삶을 시로 형상화하게 한다. 다음에 제시되는 작품은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전라도서 끌려온 명자 언니 죽을 때
삼단 같은 머릿단 잘라내어 보에 싸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언니들 따라 부른 노래 반 울음 반
누군가는 살아서 이 머리칼 울 엄니께 건네주오
걸음 바로 못 걷던 명자 언닐 안고 들어
위안소 언덕 위에 가슴앓이와 함께 묻고
돌아와 그 밤도 찬물로 아랫도릴 식히며 울었어요.


―<죠센 데이신따이>에서 “고두미 마을에서”


  인용 시에서 시인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당한 민족의 아픔을 들려준다. 하지만 시인은 그 아픔을 형상화하기 위해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누군가는 살아서 이 머리칼 울 엄니께 건네주오”,“그 밤도 찬물로 아랫도릴 식히며 울었어요.”라는 진술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 아픔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한편, 시인은‘화자의 독백’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시인의 이러한 의도는 어떤 역사적 기록보다 더 뛰어나게 우리의 비극적 역사를 시로 형상화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어떤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참혹함의 장면을 그려낸다. 다음에 제시한 역사의 한 장면을 통해 민족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피와 눈물의 얼룩으로 활자가 된 내 나라
반쪼가리 역사밖에 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중략…)
지금 넋도 뼈도 다 앗기운 채
반쪽으로 찢어져 상해 가고 있는지
반으로 나뉜 그 나라 사람들이
아빠 같은 주둔군을 미워하는 이유와
세계사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 말하던 까닭을
어째서 조국이 피와 눈물의 깊은 자존심인가를
그 나라에 가서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진아.


―<너를 보내며>에서 “고두미 마을에서”

 

  인용 시는 외국으로 입양되는‘진아’에게 들려주는 시인의 당부이다. 이 당부 속에는 시인의 역사 인식이 나타난다. 시인에게 역사는“피와 눈물의 얼룩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역사 인식은“세계사는 다시 씌여져야 한다”를 통해 약자를 위한 역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게 한다.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 강자의 역사였다. 이런 역사는 항상 사람들에게 강자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했다. 그래서 역사는 제대로 기술되지 못하고 강자를 위해 기술되었다. 하지만, 시인은 역사를 강자의 편에서 보지 않는다. 그는 약자의 편에서 약자의 슬픔을 역사로 기술하고, 그것을 문학으로 형상화한다.
  한편, 시인은‘진아’에게 민족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 상황은 ‘반쪽’으로 상징되는 분단 상황이다. 그 속에서 민족은 “넋도 뼈도 다 앗기운 채 반쪽으로 찢어져 상해”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분단 상황을 조성한 것은“아빠 같은 주둔군”이라고 밝힌다.
  지금까지 도종환의 시에 나타나는‘역사’를 통한 민족의 아픔 쓰기를 살펴보았다. 그가‘역사’를 통한 민족의 아픔 쓰기를 시 쓰기의 방향으로 잡고 있는 이유는“역사와 민중은 내 가까운 피붙이와 내 자신 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 이 모든 동시대인들의 삶에 몇 발짝 비켜서 자학하고 탄식하며 오만함 속에 또는 신비한 체험 속에만 빠져서 반성문 같은 시, 변명 같은 시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는 시인의 시 쓰기에 대한 인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시를 통해 그 어떤 역사적 기록보다도 더 뛰어나게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형상화한다.

 

3. ‘절망’ 속에서 희망 쓰기

 

  사람이면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절망적 상황을 겪게 된다. 그리고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한 모습은 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과 시인의 다른 점은 시인은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시로 형상화한다. 도정환 역시, 그의 삶에서 절망적 상황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절망적 상황을 절망으로만 갖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그의 시 쓰기 방향으로 나타난다. 다음에 제시한 작품은 그런 예에 해당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서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전문

 

  인용 시에는 절망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시인에게 절망은‘벽’이라 느끼는 막막한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시인에게 보인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론, 담쟁이에게 절망적 상황은“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담쟁이는 그 절망을 이겨낸다. 또한 담쟁이는 혼자 그 벽을 넘으려 하지 않고 “꼭 여럿이서 손을 잡고”넘는다. 이러한 담쟁이의 속성을 인식한 시인 역시 담쟁이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그것은 시인 자신만 절망적 상황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절망을 이겨내려는 공동체적 삶의 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결국 시인은 절망적 현실의 벽을 극복하는 담쟁이를 통해 자신의 절망을 극복하고 있다. 다음에 제시한 작품 역시 절망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시이다.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접시꽃 당신” 전문

 

  인용 시는“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를 통해 아내와의 사별한 상황을 제시한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돌아온 시인은 생전에 다하지 못했던 사랑의 회한(悔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살아서는 변변하지 못한 옷밖에 해 주지 못하고 죽어서야 베옷, 곧 수의(壽衣) 한 벌 해 입혔다는 표현은 지울 수 없는 사별의 아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시인은 절망을 절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칠석날’이라는 시어가 지닌 이중적 의미에 기인한다. ‘칠석날’은 사랑하는 아내가 땅에 묻힌 날이라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언젠가“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다시 만날 것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의지는 결국,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시켜 내는 힘이 된다.
  도종환 시 쓰기의 한 방향인‘절망’의 상황에서 희망 쓰기를 살펴보았다.“희망은 구하려는 자의 것”이라는 말처럼, 시인 역시 절망적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시를 쓰는 이유가 된다.

 

4.‘삶’을 통한 자아성찰 쓰기

 

  도종환은‘삶’이라는 시 쓰기 대상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시도한다. 이러한 시인의 의도는 끊임없는 자아 성찰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데 있다. 다음에 제시한 작품은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바람 부는 세월의 바다에서 또 몇 십 년
파도와 뱃전이 되어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의 얼굴 하나의 표정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파도처럼 솟았다 물방울처럼 흩어진
수많은 나여 모든 나여

―<그들 속의 나> 전문 “부드러운 직선”


  인용 시는 삶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은 시인의 태도가 나타난다. 시인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신에 대한 인식 또는 평가를 일관되게 듣고 싶어 한다.“파도와 뱃전”으로 그려진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사람에 대한 인식 또는 평가를 달리 한다. 이러한 세상사의 경향은 시인에게 “하나의 얼굴 하나의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살고 싶게 한다. 이렇게 삶에 대해 일관성 있게 평가받고 싶음은 시인이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자아 성찰의 한 과정이다. 그래서 시인은 “파도처럼 솟았다 물방울처럼 흩어진 수많은 나”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

 

한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헹구어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어긋나고 어긋나는 사랑의 매듭
다 풀어 물살에 주고
달맞이꽃 속에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시게
돌아서는 텅 빈 가슴으로
바람 한 줄기 서늘히 다가와 몸을 감거든
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 알게 될지니

―<무심> “슬픔의 뿌리” 에서

 

  시인은 삶을 살아가면서 버리기 힘든 것으로‘욕심’과‘인연’을 든다. 그리고 그것을 떨쳐 버리기 괴로울 때“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라고 이야기한다. 물의 끝에서“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헹구어”냄으로써 삶을 살아가면서 버리기 힘든‘욕심’과‘인연’을 버릴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인은‘달맞이꽃’을 만난다.‘달맞이꽃’은 시인에게 삶을 느끼게 하는 자아 성찰의 매개이다. 그래서 시인은“달맞이꽃 속에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자아 성찰을 이룬다. 그것은“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에 대해 알게 되는 삶의 경지이다.

 

동백꽃 붉은 꽃송이가 머리째 툭 떨어진다
아직 고운 자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꽃이
땟물과 섞여 떠내려간다
내가 지은 업이 물에 씻겨가길 바라며
비누칠을 하다가 아름답던 날들까지
흘려보내야 함을 안다
선업도 업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자만과 욕심과 허영의 얼굴이
섞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속옷을 빨아 다시 향기롭기를 바라기보다
선업도 악업도 햇빛에 다 날아간 뒤
그저 물 마른 냄새만 남길 바란다

―<빨래>에서 “해인으로 가는 길”


  인용 시에 등장하는“동백꽃 붉은 꽃송이”는 순수를 상징한다. 순수한 동백꽃이 속세에 찌든 땟물과 함께 섞여 내려갈 때, 시인은 삶에 대한 성찰을 이룬다. 시인은 빨래의 과정에서“자만과 욕심과 허영의 얼굴”을 씻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속옷을 빨아 다시 향기롭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가 바라는 것은“내가 지은 업이 물에 씻겨가길 바라”는 것처럼 “아름답던 날들까지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결국 빨래를 통해 자아 성찰을 이루어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선업도 악업도 햇빛에 다 날아간 뒤 그저 물 마른 냄새만 남길”바란다고 진술한다. 이러한 시인의 진술은 결국, 세속적 삶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순수함에 이르려는 시인의 성찰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도종환의 시 쓰기 방향 중 한 축을 이루는‘삶’을 통한 자아성찰 쓰기를 살펴보았다. 그는‘삶’에서 욕심과 인연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면서‘하나의 얼굴 하나의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자아 성찰을 이루려는 시 쓰기로 연결된다.

 

5. 나오며

 

  지금까지 도종환의 시 쓰기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의 시 쓰기는‘역사’를 통한 민족의 아픔 쓰기,‘절망’속에서 사랑 쓰기, ‘삶’을 통한 자아성찰 쓰기로 나타난다. 그가 이러한 시 쓰기 방향을 보이는 이유는 시 쓰기의 대상에 대한 변화와 관련된다. 즉, “고두미 마을에서”에서는 역사와 민족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접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에서는 절망적 상황과 이에 대한 극복 의지가 시 쓰기의 대상이 된다. 또한,“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에서는 자아 성찰이 시 쓰기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시 쓰기의 대상 변화는 도종환의 시 세계를 밝히는 요소가 된다. 그것은 그의 시 세계가 ‘역사와 민족의 문제→절망에서 희망쓰기→자아 성찰’로 옮아감을 알게 한다.
  결국 도종환의 시 쓰기는 인간을 비롯한 사물이 제 본질을 상실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 틀 속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하나의 본질인 ‘존재의 미학’추구를  통해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