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독후감

샛년 2010. 3. 12. 18:49

<<엄마를 부탁해>>

이 정 자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아파트 화단에 자리 잡은 천리향이 만개하여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행인의 발길을 유혹한다. 해마다 3월이면 팥알을 붙여 놓은 것처럼 꽃봉오리는 야무지다. 독특한 향이 나를 휘감고 5층인 집안까지 쫒아왔다.

눅눅해진 거실에는 향긋한 후리지아가 활짝 웃고 있다. 지난 2월28일 성우회모임에서 총무였던 현승훈부인이 깜짝 이벤트로 나를 황홀 하게했다. 안개꽃송이와 후리지아가 껴안은 꽃다발과 책을 등단축하 선물로 주어서 받았다.

작가 등단을 축하 한다는 휘장. 어떻게 알았는지 너무 고맙다. 꽃다발과 함께 전해준 책 두 권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그날 저녁 내 마음은 식사하는 동안 문학소녀로 변신했다. 얼마나 행복했으면 자청해서 건배 제의를 했을까?

“여러분! 모두 건배를 하겠습니다.”

“오 바 마.”

“회원님! 경인년 금년 내내 오로지,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만사형통 하세요.” 서로 잔을 부딪치는 열정은 27년간 쌓은 우애의 징표이리라. 오늘 모임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에 온 후 화병에 꽃을 담으며 나 자신과 약속했다. 집안 가득 향기가 머무는 동안 책 두 권을 읽고, 내 마음에 곱게 포장 하리라. 우선 ‘엄마를 부탁해’ 표지를 보며 친근감을 느꼈다. 첫 장을 넘기며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라는 구절에 마음이 뭉클 해지기 시작했다.

시골에 살고 계시던 부모님은 어머니의 70회 생일 앞두고,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생일상을 받으려고 서울역으로 왔다. 하필 번잡한 토요일 오후였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잠깐 놓는 순간 헤어졌다. 엄마는 인파에 떠밀려 아버지의 손을 놓쳤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지하철이 출발해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하고 온 가족이 찾아 나서는 소동을 벌인다.

자식들은 서울역에 마중 나가지 않은 상황을 서로 탓하며, 택시를 타지 않은 아버지에게 원인 제공을 돌렸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고 어머니가 계실 것 같은 곳곳을 찾아다니며 어머니의 모습을 찾는다. 어머니의 실종은 가족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형제들 간의 싸움으로 진전되어 모두들 생활 리듬이 바뀌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로 나의 엄마를 찾았다. 나는 어머니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던 때가 언제였는가. 어머니는 반농반어 생활을 하므로 언제나 바쁘다. 3남5여의 기둥으로 언제나 종종 걸음이다.

학교 다니던 시절, 아침에 일어나보면 도시락 네 개를 챙겨 놓고 밥상에 수저만 올려둔 채 어머니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아침 이슬을 밟으며 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토요일, 공휴일 ,일요일을 무척이나 기다렸다. 농사일에 언제나 일손이 모자라 고사리 손이라도 필요했다. 예나 지금이나 주말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어머니는 하늘이 하는 일은 막을 수 없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안 일로 더 분주했고, 밤이면 실눈으로 헤어진 옷이나 양말을 기웠다.

어느 해 추운겨울 오후.

동네에 수돗물이 생기기 전이었다. 어머니는 만삭된 몸으로 동네 우물에서 물 허벅을 짊어지고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부엌에 있는 물 항아리에 쏟아 넣기도 전에 부랴부랴 허벅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가 큰 보자기를 꺼냈다. 옆 집 할머니를 불러오라고 했다.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며 찾아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집에 달려와 보니 혼자 아기를 낳아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마저 어디 갔는지… 어머니 곁에서 숨을 죽이며 도움을 드렸다. 어머니는 태어난 아기를 보듬으며 부엌에 가서 따뜻한 물을 가져오라했다. 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태어난 남자동생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쁨이 되리라는 생각에 날고 싶었다.

태어난 여섯 번째 동생은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모두들 기뻐했다. 우리 집 올레 입구에 붉은 고추를 메달아 어귀 담 사이에 줄을 쳐 놓았다. 삼일 뒤 어머니는 삼승할망 상을 차리고,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길 빌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아기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넘쳐나던 집안에 무슨 조화인지 아기는 시름시름 아팠다. 힘없이 죽어가는 아기를 보며 어머니는 정성을 다했지만 가슴에 묻고 말았다. 어머니마저 죽을 것 같은 생각에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밤새 무서워 울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라 지금도 그때의 일들이 선명히 생각난다.

엄마는 다산했지만 병원에 한 번 가지 않고 산파도 없이 출산했다. 여장부라고 해야 할까. 어려운 순간이 닥쳐도 지혜로써 풀어 헤쳐 나간다. 어머니의 품속에는 어려웠던 일들이 화석으로 응고되어 있지만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언제나 뜨거운 용광로처럼 따뜻하다.

나는 엄마의 품속을 더듬기 위해 전화 드렸다. 집 전화는 오늘도 부재중. 다시 핸드폰으로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 어디서 무엇 하고 계세요” 라고 했더니, 신작로 밭 창고란다. 봄 감자 파종을 위해 감자 싹 눈을 나누고 있단다. 해가 나면 밭에서, 비가 오면 창고에서, 밤이 되면 집안에서, 너무 바빠서 아플 겨를이 없다는 어머니. 얼굴에는 세월이 주는 훈장. 손은 거북이의 등처럼 딱딱하다.

모든 여성은 위대하다. 특히 엄마의 존재는 찬란한 태양이며, 보물 창고라 생각된다. 요즘 사회적인 문제의 뒷면에는 가정에 문제가 많이 있는듯하다.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자녀 교육을 시킨다며, 사회는 분명 안정된 삶의 터전이리라.

‘엄마를 부탁해’ 읽어 내리면서 나의 할머니, 어머니, 나를 대입시켜보며 많은 현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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