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주의 설화 <애틋한 효자의 넋이 서린 수월봉과 녹고물>
▣ 애틋한 효자의 넋이 서린 수월봉과 녹고물
옛날 고산리 바닷가에 있는 ‘자구내’라는 동네에 한 어머니가 ‘수월’이라는 딸과 ‘녹고’라는 아들을 데리고 살았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어린 남매를 데리고 사느라 어머니는 고생이 심했다. 수월이와 녹고 또한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해 섬겨 효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비록 가난한 집이었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해 봄, 어머니가 그만 병이 들고 말았다.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끌어가느라 몸을 돌보지 않아 병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남매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좋다는 약초를 찾아 들로 산으로 헤매며 갖은 애를 다썼다.
"내가 아파서 너희들 고생이 심하구나."
"아니예요. 어머니가 너무 고생이 심하셨으니 이젠 저희들이 어머니를 모실 차례지요."
남매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병구완을 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매일매일 약초를 구해다 달여 드리고, 밤을 세우며 팔다리를 주무르기도 하면서 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좋다는 약을 다려 드리고, 좋은 음식을 잡수시게 해도 점점 힘을 잃어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수월아, 난 오래 못 살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수월이를 붙들고 힘이 다 사그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가 안 계시면 저희는 못 살아요. 이 약을 먹으면 힘이 날 거에요."
수월이는 수척해진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웃으면서 위로를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잠들자 밖으로 나와 눈이 퉁퉁 붓게 울다가 물을 길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때 마침 수월이네 집 옆을 지나던 스님이 수월이를 보더니
"무슨 일인고?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말을 걸어왔다.
"아 네. 저희 어머니가 병환이 나셔서 일어나지를 못하시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수월이는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스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거 참 딱하게 되어구나. 어디 내가 한번 볼까?"
"그래 주시겠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수월이는 좋아서 얼른 스님을 모시고 어머니가 누워계신 안방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어머니의 팔목을 잡아 한참 동안 맥을 짚어보시더니
"큰 병이 들었군. 그렇지만 내가 말해주는 약초를 캐어다가 달여드리면 어머니의 병은 틀림없이 나을 게야."
하며 백 가지의 약초를 일일이 말해주었다.
남매는 그 날부터 망태기를 등에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캤다. 망태기가 가득해진면 집으로 날라 와서 손질하며 밤을 지새는 것은 예사였고, 길을 잃어 애를 먹어도 어머니를 낫게 해드린다는 욕심에 하나도 힘든 줄을 몰랐다.
마침내, 스님이 말해준 약초를 거의 다 모았다.
"누나, 이젠 어머니의 병이 나으시겠지?"
"그럼, 정성을 들이면 하늘도 감동한다잖니."
남매는 약초를 하나 하나 헤아리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약초 하나가 모자랐다.
"오갈피가 없구나."
남매는 다시 오갈피라는 약초를 찾아 산으로 올라갔다. 숲과 들판을 헤매며 오갈피를 찾았지만 오갈피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누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높은 절벽에서 찾아보자."
"알았어."
남매는 오갈피를 찾기 위해 험한 낭떠러지가 있는 곳이나 바위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오갈피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누나, 우리 마을 바닷가에도 절벽이 있잖아요. 혹시 그곳에 오갈피가 있지 않을까요?"
"참 그렇구나, 우리 그곳에 가보자."
남매는 바닷가에 있는 절벽 위로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절벽은 너무 높아 까마득했다. 그러나 무서운 절벽도 오갈피를 찾아 나선 남매의 눈에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마침내 오누이는 오갈피를 발견했다.
"누나, 저거야! 저게 우리가 찾는 오갈피야!"
"정말 그렇구나. 오갈피가 여기 있다니, 이젠 어머니의 병이 낫게 되었구나."
남매는 절벽 틈에서 자라고 있는 오갈피를 발견하고 좋아했다.
"넌 여기서 내 손을 잡아주렴. 내가 내려가서 캐올 테니까."
"누나, 무섭지 않아? 내가 갈게."
"아냐, 넌 너무 어려서 안 돼. 내가 갈게."
수월이는 바위틈에 발을 딛으며 밑으로 내려갔다. 떨어지면 죽을지 모르는 높은 낭떠러지를 내려가는 수월이의 마음은 얼어붙었지만,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해드린다는 마음으로 무서움을 떨쳐버리고 오갈피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갈피를 뽑아들었다.
"녹고야! 오갈피를 뽑았어! 오갈피!"
수월이는 오갈피를 뽑아들자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누나, 정말이야? 오갈피를 뽑았어? 이젠 우리 어머니 병을 고칠 수 있다!"
녹고는 너무나 좋아서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녹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하다가 그만 누나의 손을 놓고 말았다.
"악 -."
그 순간 수월이의 몸은 한 송이의 꽃처럼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누나! 누나!"
녹고는 정신없이 누나를 불렀지만 수월이는 바위 위에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허겁지겁 절벽 밑으로 내려간 녹고는 죽은 누나를 보며 슬피 울었다. 그러자 녹고가 흘린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바닷가 바위틈에서 샘물로 솟아올랐다.
그래서 지금도 이 물을 ‘녹고물’이라고 부르며, 낭떠러지가 있는 오름(산)을 ‘녹고물오름’이니 ‘물나리오름’이니 ‘녹고모루’라고 불리거나 ‘수월봉’이라고 불린다.
神들의 섬 -제주의 신화와 전설- 2001 제주세계섬문화축제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