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장에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이금영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진다. 나에게도 좀 늦었지만 꿈이 있다. 시상식장에 들어서니 벌써 사람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두리번두리번 하는데 왜 늦었느냐며 '수필과 비평작가회의' 사무차장님이 반갑게 맞아주고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신인상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전북지역 수필과 비평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마련된 연잎차와 다과는 갈증을 풀어주는데 충분했고, 예향의 도시, 전주의 문화를 한층 높여 주는 것 같았다. 나도 곧 그 자리에 서서 봉사를 하겠지 싶었다. 연잎차를 한 잔 마시니 들뜬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 것 같았다. 가슴에 꽃을 단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어느 분이 신곡문학상 대상을 타는 분일까, 또 본상 수상자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수필과 비평 103호에서 등단한 오명순 님과 104호의 이승수 님을 만나니 깜짝 반가웠다. 저쪽 앞자리에 김학 교수님과 대 선배님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옆과 앞에 앉아있는 분한테 물으니 두 분이 부산에서 오셨다고 했다. 그녀들의 가족인 듯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데 젊고 핸섬한 청년이 아들인 듯싶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반갑다고 인사를 나눴다. 작품은 읽어봤지만 책속의 작품과 인물이 매치가 안 되어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수필에 대해선 서로가 할 말이 없어 집에 가서 다시 읽어보자고 하였다.
드디어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느리게 그러나 자유롭게>로 신곡문학상 대상을 받은 최병호 님은 자그마한 키에 나직한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상하면 노벨상을 생각하고 노벨상하면 슈바이처와 사르트가 떠올라 본인은 상과는 무관한 사람인줄 알았으며 문학상 또한 주변을 맴도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렇게 큰 신곡문학대상을 받게 되니, 적어도 수상 선배님들의 명예에 흠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빨리빨리 그러나 순리롭게' 글을 쓰는 문리의 외연 확대에 노력할 것"이라고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나는 대상 시상을 바라보면서 이제라도 꿈을 가져야겠다고 가슴속에서 무엇이 꿈틀거렸다. 꿈은 희망이다. 감히 언제일지 모르지만 긴 세월 그 꿈을 향해 부단히 도전해 보리라.
또 본상은 <내 마음의 강>으로 김재훈 님이 수상했는데 그 분의 수상소감은 해변 갯돌 밭 몽돌처럼 해일과 파도에 밀리고 깨어지는 많은 인고의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아픔이 없이 어떻게 마음이 다스려지겠느냐며 오늘 받은 신곡문학상도 모나고 거친 글을 정성껏 갈고 닦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피력하셨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나는 성격이 좀 까칠한 편이다. 수필을 통해 해일과 파도에 밀려 곱게 다듬어진 몽돌과 같이 내 성격도 부드러워지고, 문학의 향기로 변화되기를 고대해 본다.
그리고 문학특강에서 이상규 박사님은 언어는 고도로 응축된 지식의 별이다. 내 인생의 삶도 수필처럼 살 수는 없을까? 수필은 나를 형상화 시키는 것이고, 내 생각 내 느낌을 간추리는 것이며, 자기를 갯벌화하여 표현하고, 예술적 대상으로 형상화된 나를 조율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이성적 차원으로 모든 지식이 융합된 소재로 변방언어와 표준언어를 문학인의 작품 속에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단어 매체가 필요한 디지털화시대가 다가올 것이라 했다. 변화의 시대에도 변방언어를 품격 있고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일도 문인들의 몫이라고 느껴졌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시냇물의 소리를 아름답게 표현하기위해 꼬박 사흘동안 물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를 ‘소살소살’이라고 표현했다.
<수필과 비평>103호 104호 수상자 발표가 있고 105호 수상자속에 내 이름이 호명되니 약간의 어지럼증이 일어났지만 침착하게 신인상을 받는데 사진촬영을 하려고 우 몰려드는 카메라 앞에서 부끄럽기도 했다. 과연 이렇게 성대하게 상을 받고 수필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어쩌나 조금은 두렵기도 하였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목요반 문우 장은영 님의 센스 있는 카메라 촬영은 기성작가 이상이었다. 남편도 새로 산 카메라로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는 아들의 축하 꽃다발이 나를 흐뭇하게 했고, 이 다음에 오랜 세월이 흘러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아들은 이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현대시로 등단한 남동생이 장미꽃다발을 들고 와 누님과 자기가 같은 문인의 길을 가게되었다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행촌수필문학회에서 꽃다발, 안골수필반에서 난 화분 등 꽃 속에 파묻혀 나는 스타가 되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식사시간에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내 뒤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오라고 양보를 하니 자기는 제주도 사람이라며 명찰을 내밀고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름은 이정자 씨, 제주도에서 여섯 분이 비행기로 군산을 경유해서 쉽게 찾아왔다고 그녀는 오래된 지인처럼 껴안기도 하고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수필과 비평> 작가회회원들과는 처음 만나는 분들이어서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그것은 내가 조금 늦게 도착하여 서로가 소개를 못했기 때문이리라. 집으로 좀 일찍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 날 만큼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다음 날은 전주의 명물 콩나물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문학기행으로 버스 세 대로 나뉘어 한벽루와 전주천, 교육의 요람 향교를 시작으로, 객사의 현판 풍패지관(豊沛之館)을 개~액~사~아로 읽는다는 걸쭉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주를 찾는 문인들은 도저히 한 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해설사의 뒤를 따라 태조어진이 모셔진 경기전에서 역대 임금님들을 알현했고, 문화관광의 명소인 한옥마을의 고샅도 거닐었다. 오목대에 올라 정결한 기와지붕을 바라다 보았다.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고 개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회를 베풀었다는 해설을 끝으로 종로회관에서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하계문학회는 거제도에서 열리니 그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쉬움을 안은 채 석별의 정을 나눴다.
이제 수필가란 자격증을 얻었다. 운전면허증을 따고도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긴장이 된다. 아직은 누가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되어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다. 문학도 혼자가 아니다. 훌륭하신 문우님들이 곁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시기에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신인작가란 이름표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수필을 맑고 향기롭게 쓸 것인지 아직 그 길을 잘 모른다. 다만 그렇게 쓰고 싶을 따름이다. 전화벨소리에 수화기를 들어보니 경북 포항의 김숙임 씨가 내 등단작품 수필을 읽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격려를 보낸다고 했다. 나는 멀리 포항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들려주는 격려의 한마디에 용기가 생긴다. 우리는 팔월에 거제도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수필을 잘 쓰기 위해서는 구양수 님의 가르침대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은 생각을 해야겠지. 나는 수런거리는 대숲을 좋아하고, 사철 푸른 소나무는 더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홀로 소나무 숲길을 산책하는 걸 즐긴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많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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