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수필] 동박새가 바람났나봐 - 오승휴

샛년 2010. 4. 12. 22:30

                                                                           동박새가  바람났나봐


                                                                                                                                                   오  승  휴

 

    꽃구경 가자고 약속한 날이다. 손녀와 봄나들이에 나섰다. 벚꽃축제가 열리는 거리는 상춘객들로 출렁인다. 대학로와 전농로의 벚꽃 터널을 지나 숲길을 걸으며 봄꽃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거리에도 숲속에도 온통 벚꽃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화사하다. 흐르는 세월에 허전했던 마음이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자연은 푸짐한 선물을 준비하고 우릴 기다렸나보다.

    “저기 저 나뭇가지에 저게 뭐에요?”

   숲속 둔덕에서 어린손녀가 호기심어린 동그란 눈으로 큰 벚꽃나무를 가리킨다. 왕벚꽃이 활짝 핀 가지에 뭔가 얼핏얼핏 움직인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했다.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니 아주 조그만 새다. 예쁘고 귀엽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어떤 녀석은 작은 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 꽃술을 먹고 있다. 꿀을 빨고 있는지도 모른다. 찌이 찌~이 노래하며 여기저기 가지를 옮겨다닌다. 눈을 반짝반짝 굴리며 방해꾼은 없는지 경계심이 대단하다. 무척이나 민첩하다. 한참 자세히 보니 동박새가 아닌가! 벚꽃 속에서 재밌게 노는 녀석을 만나다니 뜻밖이다.

   어릴 적 고향집 텃밭에는 오래된 동백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동백꽃이 만발하면 동박새들의 소리로 야단이었다. 동백나무는 관상수로서 방풍울타리이기도 했고 그 열매 또한 소중하게 쓰였다. 이웃 주변에도 동백나무가  많아 천미천 내가 흐르는 우리 동네는 군락을 이루다시피 했다. 그때 따먹은 동백꽃은 꿀맛이었다. 꽃향기와 꿀을 찾아 새들이 몰려왔다.

   동박새는 앙증맞게 귀여운 새다. 동백꽃 속을 들락거릴 만큼 몸집이 아주 작다. 몸 빛깔은 녹색인데 목이 노랗고 배는 희다. 눈 주위엔 흰빛의 동그란 무늬가 있어 눈이 도드라져 보인다. 애완용으로, 관상용으로 사람들이 탐냈다.

   동네 아저씨는 이 새를 잡아 남에게 팔기도 했다. 대나무 잔가지로 새장을 만들어 동백나무에 걸어 덫을 놓았는데, 그 안에는 동박새가 좋아하는 까끄레기낭*열매를 넣어 미끼로 썼다. 어떤 때는 먼저 새장에 한 마리 가둬놓고 부부금슬이 좋으니 다른 녀석을 유인해 잡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 아저씨를 곧잘 쫓아다녔다. 키우고픈 마음에서였는데, 나도 밤이면 꿈까지 꿨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덫을 놔 잡은 새를 집안에서 키우는 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가 대단했다. 지금도 퍽 아쉽다.

   우리 집 동백나무에는 덫을 못 놓게 했다. 평소 어머니답지 않게 동네 아저씨가 사정해도 거절했다. 이걸 아는지 동박새가 떼 지어 날아들었다. 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 동백이 주렁주렁 달렸다. 가을이면 오일장에 가서 동백기름을 짜고 와 이웃에 나눠주며 인심을 썼다. 식용이나 약제로도 쓰였지만, 여성들의 머릿기름으로 최고였다. 여성이면 너나없이 반질반질 윤기 나는 까만 머리를 원했음에랴. 화장품이 귀했던 시절, 그건 소중한 여성 필수품이었다.

  그 당시 먹을 게 귀하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새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추운 겨울을 나는데 동백꽃의 달콤한 꿀은 동박새의 좋은 먹이였고, 동백나무는 그 거처였다.  새가 꽃 속에서 꿀을 먹으며 자연스레 몸에 묻힌 꽃가루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진다.  이리 꽃가루수정이 이뤄지니 해마다 우리 집 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려 볼만했다. 애틋한 꽃의 사랑에 예쁜 새의 응답으로 맺어진 결실이렷다.

   무심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새삼스럽다. 생태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생명체의 공생관계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라졌다. 변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동백꽃은 그 녀석의 전유물도 소유물도 아니요, 혼자만 독차지 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도 아니다. 벌과 나비가 그 역할과 사랑을 넘보며 몰려든다. 요즘 개량 동백꽃은 가을에도 봄에도 피니 벌과 나비가 그 꿀맛을 알고 말았다. 동박새도 이제 동백꽃만 바라보며 살 수 없음을 눈치챘나 보다.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해야 할 것인가. 

  동박새가 따스한 햇볕에 왕벚꽃을 따먹으며 봄을 즐기고 있다. 벚나무가 자연의 빛과 소리에 때맞춰 꽃을 만발하게 피워낸 것이다. 겨울추위를 견디어 내려 얼마나 발버둥이 쳤을까. 봄을 시샘하는 비바람에 꽃망울 터트릴 시기를 놓칠까봐 애간장을 태웠으리라. 반짝이는 봄 햇살을 기다리며 바람소리 물소리에 귀기우려 온 벚나무가 아니던가. 혹독한 인고(忍苦)의 세월을 잉태하여 출산의 진통을 겪고 태어난 벚꽃이 눈부시다. 산들바람에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듯 꽃잎이 허공에 팔랑거린다.

   왕벚꽃이 동백꽃에 뒤질세라 한껏 미모를 자랑하며 새와 사랑을 나누는 품새가 멋지다.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달콤한 꽃과 새의 사랑을 훔쳐보느라 눈길을 쉽사리 못 돌리는 나이든 내가 꽤나 우습다. 옛 선비는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라며 봄을 노래했는데, 저 녀석은 기다림에 애타는 동백꽃을 벌써 잊었을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게 있을 터인데.

   “동박새가 어째서 벚나무에서 놀고 있나요?”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녀가 묻는다. ‘동박새’하면 동백꽃이 우선 떠오르는가 보다. 으음, 이걸 어쩌나.  ‘바람났다’는 말뜻을 어린손녀가 알까? 벚꽃이 예뻐서 그럴 거라고 대답하려니 얼굴이 붉혀진다.

   어린 시절이 그리움으로 젖어든다. 오늘 밤엔 꿈속에서 바람난 동박새를 붙잡을런지도 모르겠다.       ( 2010. 4 )

                                                              

 

 

 

 

 

 

주) *까끄레기낭은 제주어인데, 사스레나무를 말한다. 이 나무열매는 동박새가 먹이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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