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家出)과 출가(出家)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조윤수
택배 꾸러미 포장지를 뜯었다. <아름다운 마무리> 하얀 표지 위에 백합꽃 두 송이가 간결한 선묘로 새겨져 있다. 꽃잎 한 송이가 툭 튀어나올 것 같다. 거실의 서향(瑞香)이 꽃잎의 그림에서도 풍기는 듯하다. 표지의 인상이 '단순하고 간소하게!' 그대로다. 수행의 향기가 갈피마다 서려있는 법정 스님의 유지가 아닌가.
춘설이 폭설로 내린 다음 날인 3월 11일,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뉴스에서 알게 되었다. 다비식이 끝나는 날까지 뉴스 시간마다 법정 스님의 열반 소식이 그의 행장과 함께 소개되었다. 머릿기사로 등장하는 또 다른 한 인물이 있었다. 김길태, 그는 가출하여 한 소녀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자였다. 삶의 내용에 따라서 사람의 모습이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인다는 사례 같았다. 출가 수행자는 연꽃 같은 삶을 살지만, 추락한 가출자의 모습은 축생으로 보였다.
불성(佛性)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중생과 부처는 하나라고 했다. 그러나 성불은 아무나 이룰 수 없다. 본인의 선택에 따른 수행의 노력에 의하여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야차로 추락할 수도 있다. 한 마음 돌이키면 부처라고 했는데 그 마음의 길을 잡을 수 있는 인연을 생기(生起)해야 한다. 출가자들에게는 좋은 습관에 머무는 것도 마(魔)가 된다. 생의 무상함이 절실할 때마다 초발심을 더욱 굳히게 된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버리고 떠나기를 거듭하신 끝에 다른 차원으로 떠나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하물며 나쁜 습관임에랴! 출가자는 스스로 맑은 가난을 선택하지만 가출자는 집착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여 허덕이다 범죄자까지 되기도 한다.
나는 매일 떠난다. 가출인가 출가인가. 생계를 위하여, 행복을 위하여, 좋은 것에 더 좋은 것을 채우기 위하여, 편리한 것에 더 편리한 것을 찾기도 한다. 자기의 성취를 위하여, 좋은 풍경과 좋은 소리를 보고 듣기 위하여 먼 데까지 마다 않고 가서 사진을 잔뜩 찍어 가지고 오기도 한다. 선업도 업이건만, 죽비소리가 들린다. 법정 스님의 산문집 '무소유'로 인하여 법어 같았던 '무소유'란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말은 좋지만 무소유를 실천하는 일은 얼마나 좋아할지 의문이다. '무소유'란 말까지 '소유'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모든 꽃은 단순하고 간결한 구조를 지녔다. 향이 있는 꽃은 결코 그 수형이 아름답거나 화려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제 분수만큼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뿐이다. 사람도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수행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서향을 지닐 수 있는 것을 출가사문들과 세상 속에서 출가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에게서 가끔 본다. 스님의 다비식은 거룩했다. 평소의 복장 그대로 화려한 장식이나 근엄한 의례도 없었다. 우리는 얼마나 불필요하면서도 거북스런 형식을 갖추는데 힘을 낭비하는가. 스님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일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향 맑은 생활임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셨다. 허례허식과 관념에 매어있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죽비였다.
시집으로 출가한지 십 년차쯤에 내 녹슬어 가는 삶의 타성에 대한 고민이 엄습했다. 인생의 허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남편과의 정신적 유대감을 이루지 못하고 티격태격을 거듭한 적이 있었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 는 광고문구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새로 살 수 있는 전자 제품도 아니고 출발지로 되돌아갈 수 있는 여행길도 아닌 일. 혼인의 출가를 뒤집고 싶었다. 우리의 부부싸움은 내가 가출을 하면 일단 휴전이 되었다. 어떤 때는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돌아오면 남편은 집안을 깨끗이 치워놓고 말없이 미소로 반겼다.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 마음 공부가 된 것이다. 오히려 그가 재가 출가자(在家 出家者) 같았다.
옛 인도인들은 나이 40이 넘으면 출가 수행한다고 들었다. 그 무렵 다도(茶道)와 요가에 입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불교에 접근할 수 있었다. 차(茶)를 만들기 위해서 절에 갔을 때 연꽃 같은 나의 차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이 참 부러워요."
"암, 부러워해야지!"
그분의 대답은 그리도 당당했다. 법정 스님의 입적을 보면서도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살면서 그 이상 다른 것을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훈련 없이 영혼의 자유를 얻은 자는 일찍이 없었다. 드디어 나도 출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986년 여름이던가. 법정 스님이 송광사 선수련회 원장을 맡고 계실 때였다. 한 해 5백여 명의 수련생들이 종파를 초월하여 운집하였다. 내가 참석했을 때도 목사와 수녀님도 있었다. 이름하여 '출가 4박 5일'. 식사 때는 발우공양의 게송을 음송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진리를 수행하는 약으로 알고 이 음식을 받습니다.' 음식의 근원이 나의 근원이었다. 좌선의 맛이 차(茶)맛과 같다는 의미를 알았다. 선다일여(禪茶一如). 수련생들의 어깨에 떨어지는 죽비는 마음의 게으름에 내리는 일침이었다.
잊을 수 없는 법정스님과의 독대. 그때만 해도 나는 참 선무당 같은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스승이자 때로는 친구 같은 성직자께 논리도 없는 질문으로 잘 따졌다. 내가 시집으로 출가한 것을 뒤집고 다시 절집으로 출가하고 싶다고 했을 때 법정 스님은 한 달만 참으라고 타이르셨다. 우리는 나날이 달라지고 생각도 변한다고. 혼인생활은 좋은 수행처라 하셨다. 오히려 출가 수행자들이 더 위험한 방종에 놓이기 쉽다고 했다. 그것은 천주교 신부님들도 마찬가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재가자(在家者)들의 생활 장소는 훌륭한 도량이 된다고 했다. 바른 노력이 수행이라는 뜻이다. 법정 스님은 수련생들에게 확고히 말씀하셨다. 재가자들도 치열한 출가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스님의 걸음걸이에서는 늘 춘설을 뿌릴 듯한 쌩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스님의 맑고 고운 얼음 같은 표정과 정갈한 가사(袈裟) 속에는 꽃샘바람 속에서도 피어날 수밖에 없는 매향(梅香) 같은 수행의 향기가 쌓이고 있었던 것을 한 시절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영혼의 자유를 알기까지 오랜 동안의 투쟁적인 실험정진이 나를 성숙시켜주었다.
죽비소리 그립다
'출가 4박 5일' 이후 출가정신으로 무장한 나는 심출가자(心出家者)가 되어 세상으로 새롭게 출가했다. 자신의 성찰을 위하여 땅에서 일하는 것을 수행의 출발로 삼았다. 최소한 내가 먹을 것은 밭에 심고 흙을 통하여 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했다. 자연에 인위를 더한 인류의 이상향을 꿈꾸는 동료들과 실험적인 행복운동에 참가했다. 마음 수련을 통하여 생활 선(禪)을 익혔다. 그것은 한 번도 교육 받아본 적이 없는 생명체와의 공생의 방법을 터득하는 길이었다. 나의 출가정신에 온가족과 가까운 이웃들도 동참했다. 같은 길을 가는 도반들이 있어 힘이 된다. 가족의 의미도 확대되고, 종교의 벽도 없어졌다. 그것은 나의 확장이었다. 그래도 삶을 꾸리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걱정거리도 없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행복은 완전한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에 마음이 매이지 않을 뿐,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즐긴다. '출가 4박 5일'의 체험은 생의 장강을 건너는 작은 뗏목에 불과했다.
법정 스님도 출가할 때 제일 걸렸던 것이 책이었다. 풋중 시절의 분서(焚書)를 통하여 세속적인 자신을 깡그리 불태울 수 있었다. 깨닫고 학문하라 했으니 나도 정진의 초기에는 책을 버렸다. 대 긍정의 열기를 맞으려면 부정의 단계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제였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지만, 도를 닦기 위해서는 할 일은 없어지고 단순해진다. 신문을 3일 동안 보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지만 3년을 안 보면 도인이 된다고 했다. 색안경을 벗고 보는 세상이 날로 새롭고 아름다웠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있는 그대로 보일 때, 무의미의 극치에서의 대 전환은 의미 있는 세상이었다. 세상에 있는 동안은 의미를 떠날 수 없노라고 하면서, 수필 쓰는 일로 거듭 출가한 것이다. 버렸던 책들을 다시 집었다. 예전의 것이 아닌 새 책, 책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책 읽기.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중에는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책들이 많았다. 법정스님도 세속 일에 참여하는 동안 출가정신에 어긋나는 일임을 알게 되면 여지없이 초발심으로 돌아가셨다. 나의 출가정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부끄럽기만 하다. 저 때의 죽비소리가 들린다.
"수행자는 한 평생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바쳐야 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의 인생은 이미 녹슬어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법정 스님은 스스로
"나는 성미가 급하네."
하신 대로 일대사 변화를 위하여 봄꽃 피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셨다. 춘설이 덮인 세상을 뒤로하고 꽃샘바람을 가르면서 훨훨 떠나셨다. 수행처였던 불일암 매향도 수류방 새소리 물소리도 다비의 연기를 따라 전송했으리라. 우리 집 천일향도 만리까지 따라갔겠지. 육안으로 볼 수 없어도 이미 그의 우주 안에서 모든 생명은 하나였으니, 그 모든 생명체 안에서 스님의 우주를 만날 것이다. 그의 우주가 내 안에도 있으니 내 안의 나를 그리워하자. 일상의 타성과 게으름이 독이 된다는 말씀이 죽비가 되어 내리친다.
(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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