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알고 쓰자▓
수필의 내용과 표현
강 돈 묵
가. 무엇을 쓸 것인가.
전통적인 장르론에서는 서정 ․ 서사 ․ 극으로 가르고, 이들은 전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에 와서 여기에 제4장르로 교술을 보태면서 그 대표적인 것으로 수필을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교술은 비전환적 표현을 한다는 것이 태생적 특징으로 되어 있다. 즉, 수필은 허구를 넣을 수 없는 비전환적 표현을 하여야 한다는 멍에이다. 어디까지나 작가가 경험한 체험의 세계를 소재로 하여 글을 써야 한다는 제약이다.
굳이 여기서 수필의 허구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상상적 체험(想像的 體驗)은 가능한데도 그마저 나태하게 게으름만 펴는 글이 많다는 데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진정 수필이 문학이라고 믿는다면, 적어도 상상적 체험은 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필의 소재는 작가의 삶 속에서 취택한다는 태생적 특징을 우리는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삶 속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그것의 본질을 찾아 작가의 시각으로 해석해낸 바를 참신하게 형상화하는 것이 수필이다. 그런데 작가의 삶 속에서 소재를 가져온다 하여 있는 현상을 그대로 적으면 수필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한국 수필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현상을 적고서 수필을 썼다고 하는 점이다. 체험의 기록으로 인식한 나머지 현상만을 적고 있다. 남들이 봐서는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자기만의 체험으로 여겨 줄글로 기술해 놓고 수필을 섰다고 믿는다. 이러한 현상은 그 어느 장르보다 많은 작품이 발표되면서도 폄훼되는 단초를 제공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긴 잠에서 깨어 다시 잠에 들 때까지 시야로 들어오는 모든 물상과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는 단순한 현상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다 현상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소재는 작가의 삶이 들어가 재해석하여 다시 태어나야 한다. 소재의 본질은 작가의 시각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작가의 소재를 받아들이는 수용 자세에 따라 그것은 다른 모습을 하게 된다. 같은 소재라 해도 작가마다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든 문학이 현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본질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수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삶에서 건져 올린 소재로 글을 쓰되,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본질을 찾아 적어가야 하는 것이다. 수필을 씀에 가장 유념해야 할 사항이 바로 이 점이다. 한국의 수필문단의 현재 모습에서 가장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소재에 따라 시로 써야 할 것과 소설로 써야 할 것이 구분되지만, 수필은 어느 것이든 다 수용해서 사용할 수 있다. 즉 ‘생각나는 대로’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생각한 모든 것들이 수필의 내용이 될 수 있다는 다양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소재에 불과하다. 이것을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고 본질을 찾아 적어야 한다.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수필에는 예시 단락이 있고, 일반화 단락이 있는 까닭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대로 소재만을 소개하는 부분은 예시 단락이고, 이 소재가 갖는 의미를 찾아 의미화, 주제화, 형상화하는 일반화 단락이 있어야만 진정한 한편의 수필이 된다.
물론 글을 씀에 참신한 소재를 가지고 쓰면 성공하기가 쉽다. 그러나 참신한 소재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두고 소재의 해석에 전념해야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늘 참신한 소재를 찾아내고, 참신한 해석이 가능하다면야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여하튼 작가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나름 자신의 존재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소재의 본질 찾기에 매진해야 한다.
나. 어떻게 쓸 것인가.
참신한 소재에, 참신한 해석이 이루어졌다 해도 그것을 기록하는 문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글은 실패한다. 흔히 이야기할 때, 작가라면 이미 문장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문장을 씀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것은 한국어의 특질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 한국의 수필 문장과 서구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두 언어의 다른 특질에서 비롯된다. 즉, 서구의 언어는 수동형이 발달되어 있지만, 한국어에는 수동형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말은 대부분의 문장 주체가 인간으로 되어 있고, 서구의 언어는 다양한 성분의 어휘들이 이 자리에 놓일 수 있다. 서구의 언어에서는 사물이 주체가 되는 문장이 다양한 데 반해 우리에게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런데 수필은 태생적으로 작가의 삶의 고백이다. 그래서 문장의 주어는 ‘나’라고 독자와 약속되어 있는 셈이 된다. 주어인 ‘나’를 밝히지 않아도 독자가 혼돈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면 굳이 지면을 할애할 일이 아니다. 수필을 씀에 있어 주어인 ‘나’는 최대한 생략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장일뿐더러 문장의 리듬에도 공헌한다.
문장은 짧게 써야 함유한 뜻이 크다. 문장의 기술 방법은 앞의 문장과 연상에 의해 이어져야 무리가 없다. 그런데 문장을 길게 써서 함유한 뜻의 범위를 좁혀놓고 허덕일 필요가 있겠는가. 넓은 뜻으로 가야 뒷문장이 이어지기가 수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은 짧게 써야 함이 당연하다.
문장에는 몇 가지 질서가 있다. 그 질서를 지켜줘야 문맥이 선명해진다. 음성언어는 말할 때의 분위기나 제스처와 같은 것의 지원을 받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전달하기 쉽지만, 문자언어는 그러한 것들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확실한 논리와 문맥이 잡히지 않으면 독자에게 정확한 전달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는 묶어서 처리해야 독자들에게 부담을 덜 주고, 올바로 전달이 가능하다. 아무리 현대 문장이 운율을 요구한다 해도 산문은 산문인 것이다. 여기에는 형태단락의 개념이 확실해야 한다. 최근 문장에 더러 독자들에게 시각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구실로 형태단락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한 문장이 한 단락이 되는 글을 쓰는 경우도 눈에 띄는데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몇 가지를 점검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첫째 주어와 서술어가 올바로 되었는가. 설마 이런 경우가 있으랴 할지 모르나 많이 어긋나고 있다. 이것은 문장을 길게 쓸 때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길게 끌고 가다보니,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어긋나고 만다.
둘째, 수식어의 남용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글을 쓸 때에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는 욕심은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미문을 쓰려는 욕심은 글을 그르치는 지름길이다. 한 문장에서 수식을 받는 말은 강조해야 할 문장성분 하나에 국한해야 한다. 문장성분마다 모두 수식을 하게 되면 부분은 아름다울지 모르나, 독자가 올바른 문장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
셋째, 부사의 남용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부사란 어찌 보면 강조의 의미가 들어 있다. 한 문장 안에서 두 개 이상 부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두 개의 어휘를 강조하게 되는 셈이 된다. 그러면 어느 것을 강조한 것인지 모호하다. 또 부사를 남용하면 나중에 제대로 강조해야 할 때에 부담이 될 수가 있다. 흔히 말하듯 ‘약을 남용하면 약발이 받지 않게 됨’과도 흡사하다.
넷째, 접속부사의 남용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접속부사는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다. 이러한 접속부사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문맥을 매끄럽게 할 수 있는 문장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습관적으로 이 접속부사를 남용하면 문맥을 따라가는 독자에게 긴장감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섯째, 열거를 할 때에는 각별히 점검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열거되는 어휘들이 통사론적으로 같은 것인가를 점검해야 한다. 명사의 열거에 느닷없이 동사가 끼어든다면 그 문장은 잘못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거되는 어휘의 신분이 같아야 한다. 사물을 열거하다가 느닷없이 사람이 나오면 안 된다. 특히 열거할 때는 수식어의 사용에 각별한 조심을 해야 한다. 앞에 붙어 있는 수식어가 열거하는 모든 어휘에 걸쳐서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열거에도 질서가 있다. 물론 공간적 구성이나 시간적 구성에서는 그에 타당한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화단의 꽃을 열거해도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순서가 정해질 수도 있고, 초본과 목본으로 정리한다든지, 꽃이 피는 순서에 맞춘다든지, 크기에 따라 정리한다든지 하는 질서를 잡아 주어야 한다.
이상 수필을 쓸 때에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을 정리해 보았다. 아무리 이런 주장을 한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런 지적의 글을 보고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밀어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바로 나의 경우라고 받아들이는 겸손이 있어야 작가의 발전은 가능하다.
보다 많은 수필가들의 끝없는 노력이 이어져 한국 수필문학이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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