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순 희
강 순 희 지렁이와 동거에 들어간 지 열흘째다. 동거하기 오래전부터도 나는 거의 매일 지렁이와 입맞춤을 했었고 오늘도 바깥나들이 나가며 습관적으로 그 행위를 한다. 윤기 반지르르한 그 물체를 얼굴마무리 단장으로 바르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탐닉하듯 간접 뽀뽀를 하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지렁이가 예쁘다거나 귀여워서 쓰다듬어주며 그렇게 즐길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화장대에 즐비한 립스틱이 이를 입증함에야. 립스틱과 립그로즈의 주원료가 지렁이의 체액이라는 사실을 안 건 최근의 일이다. 기분은 별로였지만 지렁이의 미끈한 체액이 재료인건 수긍이 간다. 내 얼굴 단장에 한몫을 하는 인연은 우리 집 화단에 식구로 들여 놓으면서 동거라는 연분으로 또 다시 맺게 됐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해서 지역 동 주민센타에 가서 지렁이를 무상으로 분양받던 날, 젊은 여성 몇몇은 흙과 함께 이십 키로 자루에 담긴 지렁이를 보자마자 질색을 하며 키울 자신이 없노라고 고개를 설래설래 한다. 그들 몫까지 챙겨들고 와서 화단에 쏟아 넣었다. 시골에서 성장하였으니 지렁이에 대한 혐오감이나 징그럽다는 느낌은 덜했기에 스스럼없이 내가 키우마고 했다. 장갑을 단단히 끼고 작업을 했지만 지렁이들이 꾸물거리는 감촉엔 움칫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렁이를 분양받을 때는 유기질 덩어리인 흙에 더 욕심이 쏠린 건 사실이다. 화단의 흙이 메마르고 팍팍했는데 영양덩어리 흙을 한 가득 채워 넣으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어림잡아 수천마리의 지렁이 식구를 거느리는 안주인이지만 만지고 싶지도 않고 꼬물거리는 걸 얼굴 들이대고 들여다 볼 마음은 더구나 없다. 아무려나 지렁이와 함께하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으니 쓰레기봉투 값도 절약되고, 지렁이가 만들어준 친환경 비료로 유기농 채소도 길러보게 될 기대로 부풀어 있다. 일단은 지렁이와의 동거에 만족한다. 두어 평 남짓한 화단의 흙은 일대 변혁 중이라 시끌벅적하다. 대여섯 쪽씩 펼쳐든 배추 잎사귀들도 만면에 웃음 가득 머물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렁이 분변토 위에 턱하니 이사시켜준 것도 행운인데 지렁이 무리들이 쉴 사이 없이 뿌리주위를 돌며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에 감지덕지하는가 보다. 실뿌리 잘 뻗으라고 흙을 경운까지 해주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을 게다. 지렁이, 어감부터도 좀 느글거리고 생김새도 그저 그렇지만, 자연 생태계에서 참 유익한 생물인 것만은 확실하다. 은근히 정이 쏠리기 시작한다. 이른 새벽 동녘이 희붐할 즈음에 살그머니 앞 화단에 발길 머문다. 어제 살짝 흙 밑으로 들이민 단감껍질이며 찐 고구마 껍질 등을 잘 먹었는지, -실은 쓰레기처리를 잘 하였는지- 확인하고픈 마음에 쪼그려 앉았다. 어쩌면 꼬물거리며 빨아먹고 있는 게 눈에 띄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야행성인 습성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쓰레기를 옥토로 바꿔놓는 그 능력 앞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음식물도 지렁이들이 처리할 만큼씩 조절해서 주면 냄새는커녕 주위에 불결함을 남기지 않는다. 밤새 제들이 먹어치운 만큼의 분변토가 지면에 깔린 걸 보면 제 몸무게의 반 이상을 먹이로 취한다는 사실도 실감난다. 분변토는 바싹 말리면 탈취제로써 우수하다고 하니 그 또한 기대가 크다. 땅속을 쉼 없이 돌아다니며 땅을 갈아주고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가상한데 한 마리가 소화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일주일에 200g, 즉 우유 1팩 정도의 쓰레기 처리를 한다니. 더구나 토양오염 예방과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감축에도 기여하는 이로운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주위에는 동물이나 곤충 등을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기기 위하여 애완용으로 즐겨 키운다. 나도 강아지, 새, 금붕어 등을 키워본 적이 있다. 집에 애완용 생물을 키우는 건 잔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금붕어 몇 마리를 함지박만한 어항에 키우는 것도 한 달에 두어 번 어항청소를 해야 하고 물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집안에 비린내와 어항에 이끼가 껴 지저분하다. 또한 애완용 강아지를 돌보는 건 얼마나 잔손이 많이 가나. 대소변 오물처리며 여름이면 아무리 청결하게 뒤치다꺼리해도 파리 떼가 휘저어 다니고. 그에 비하면 애완용은 아니지만 타산적으로 보나 유익한 면으로 보나 지렁이 키우기는 누워서 떡 먹기다. 까다롭거나 힘들지 않아 퍽 수월하다. 제 스스로 흙속에서 뒹굴며 알을 낳아서 번식시키고 땅을 기름지게하며 쓰레기까지 치워주니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살아있는 식물은 아무리 먹음직스러워도 건드리지 않고 사람들이 먹으라고 주는 것만 고스란히 처리 하며 옥토로 만들어 주니 그 또한 얼마나 고맙나. 쿠바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유기농만으로 자급자족하는 나라다. 요즘같이 자연 생태 환경적인 음식의 질에 주목하게 되면서 쿠바의 유기농법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고 있다. 불과 10년 만에 대 국가 정책으로 이루어낸 유기농법의 시초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쿠바의 농업이 급박한 기로에 서있을 때였다고 한다. 전적으로 소련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화학비료 농약 트랙터 등 농기계와, 석유의 공급이 끊어지는 사변事變 같은 현실에 놓이게 된다. 이에 쿠바 정부는 ‘유기농업으로 자급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결과는 놀라웠다. 지금은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는다니, 그것도 유기농만으로 생산된 농산물로. 그에 한 몫 하는 지렁이를 농가마다 키우며 지렁이 분변토를 활용하는 쿠바를 보며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에 직면한 우리 농업의 실태가 암담하게 다가온다. 세계 문명을 앞서가는 미국에서도 밭에 지렁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그 농토의 값이 다르다고 한다. 항상 땅속에 있어서 좀처럼 보이진 않지만 지렁이들의 삶이 성스럽고 위대해 뵌다. 낮에는 햇빛, 밤에는 달빛과 별빛도 먹으며 푸근한 흙과 더불어 지렁이 식구들이 우리 집 화단에서 안주하게 되리라. 생각치도 않았던 지렁이와의 조우로 자연생태계의 가치와 중요성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큰 거리를 만들었다. 자연의 이치가 수많은 도리로 통하듯 뚫고 헤쳐 나가는 게 長技인 지렁이와 친해서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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